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물었다.

 

 

그들이 이러한 질문을 한 의도

예수님을 고소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이지(요8:6절),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율법에는

간음한 사람을 사형에 처하라

명기되어 있다(레 20:10, 신 22:22~24),

반면, 당시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삼았던 로마의 법

민간인에게 사형 집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면 로마법에 걸리게 되고,

치지 말라고 하면 율법에 위배된다.

결국, 어느 쪽을 선택하든

예수님 앞에는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께서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를 쓰시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대답을 재촉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흠을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무엇인가를 땅에 쓰셨다.

무엇을 쓰셨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하나씩 모두 물러갔다.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자의 죄를 결코 가볍게 보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죄인에게 정죄가 아닌, 율법의 근본 정신인 사랑을 실천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가 주어진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당신이 당신 자신을 증언하고 있으니

그것은 참된 증거가 못 된다.’ 고 반박하였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도 기록된바,

예수님은 빛이시며 생명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시고,

그후 낮과 밤을 정하셨다(창 1:1~5).

이와 같이 육적 이스라엘을 끝내시고

영적 이스라엘을 창조하실 때에도

가장 먼저 예수님을 세상의 빛으로 보내셨다.

그 빛

진리로 어두움 곧 죄 가운데 있는

무지한 인생들의 심령을 밝혔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상고하면서도,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고(요 5:39)

성경의 증거가 하나님의 증거일진대,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은

곧 그를 증거하고 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거짓이라고 하는 결론에 이른다.

 

 

그들은 표면적 혈통

즉 예수님이 요셉이라는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라고 하셨다.

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성전 연보궤 앞에서 이 말씀을 하셨으나,

아직 때가 되지 아니하여 그를 잡는 사람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간다고 하신 곳은 어디인가?

기회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신 후에는

예수님을 만나려 해도 만날 수 없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오해하여,

예수님께서 자결하려는 줄로 알았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

 

 

위로부터 나는 것은 성령으로 나는 것을 말하며,

아래에서 나는 것은 육체를 따라 나는 것을 말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령으로 나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된다.

초림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했듯이,

오늘날도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이

성령의 약속으로 난 사람들을 핍박한다.

그러나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은 결국 죄 가운데서 죽게 된다.

땅에서 육의 씨로 난 자는 땅으로 가고,

하늘에서 성령의 씨로 난 이는 하늘로 간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할지라도,

영적으로는 그 조상 아브라함과는 다른, 죄의 종일 뿐이다.

만일 그들이 진리 안에 거하였다면 죄의 종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아브라함이 그토록 보기를 바랐던 예수님을 죽이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죄의 종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집에 거할 수 없다.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은

오직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뿐이며(요 8:32, 롬 6:17~18),

그 말씀을 대언하신 예수님뿐이시다(요 8:36, 요일 1:7).

 

예수님의 말씀이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 거할 곳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과 그들의 영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이 다르면 생각과 말이 다르게 마련이다.

이것은 그 사람 위에 있는 신이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같은 아브라함의 혈통이셨으나,

‘내 아버지와 너희 아비가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영적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유대인들의 영적 아비는 마귀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본 것을 말씀하시며 행하셨고,

예수님을 죽이려 한 유대인들은 그 아비 마귀를 따라 말하며 행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유대인들은

끝까지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는 주장을 고집했다.

 

 

만약 아브라함이 초림 때 있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예수님을 영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하면서도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처럼 환영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아버지는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과 함께 오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죽이지 못해 애를 태웠다.

그들에게는

성령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었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비는 마귀라. 라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신다.

 

자녀가 아비의 성품을 이어받듯이,

거짓말쟁이 마귀를 아비로 둔 자는 마귀가 하는 소행을 따라 한다.

그는 마귀처럼 진리를 말하지 못하고

제 본성과 생각대로 거짓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떤 영이 역사하는지는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분별할 수 있다(요일 4:5~6).

유대인들이 진리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본문 47절 성구와 같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반감은 커져만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는가 하면,

귀신 들렸다고 했다(요8:48절).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말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상스러운 욕 중 하나였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면 가던 길을 피해 갈 정도로 경멸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도 훨씬 전인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요 1:1~4).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고 하자,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했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피하여 성전에서 나가셨다(요8:58~59절).

 

이상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난 육신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하셨다.

영적인 일을 육신의 눈과 귀로 깨닫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자는

형벌을 피할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 세계에도

본장과 같은 일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부정했듯이,

일부 기성교단 목자들이 신천지를 이단이라 핍박하고 있다.

오늘날 무지한 일반 목자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이 최고인 것처럼 여기며,

성경대로 창조되고 성경대로 새 일을 이루고 있는 신천지가

자신들과는 다른 신흥 교단이라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없는 진리의 말씀이 신천지에 있기 때문이다.

봉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통달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고 있는 신천지를 비방하고 있는 그들이야말로

현대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아니겠는가?

 

2005년 가을,

우리 신천지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카페 몇개를 표본으로 삼아

신천지에 대한 비방 글을 조사해 보았다.

당시 이삼 년 간 비방자들이 실어 놓은 글은 5,400여 개에 이르렀다.

카페는 위증이 아니면 인신 공격과 거짓으로 난무했다.

하나님의 진리와 예수님의 사랑이 없는 거짓말은

그들이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듯이(마 7:15~20),

그 말과 행실로 그들의 실체를 알 수 있다.

한국 기독교계는

예수님 초림 때의 유대인, 서기관, 바리새인들처럼 진리가 없는,

죄의 종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진리를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와,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지각이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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