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를 지나가시다가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러 온 한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며 말을 건네셨다.
그리고 육신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물을 길러 온 여인에게
영원한 생수가 있음을 알려주셨다.
수가 동네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오해하였다.
수가성 여인은
다시는 육신이 목마르지 않기 위해,
또 물을 길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없애기 위해
예수님께 그 물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고자 하신 생수는
영의 기갈을 해소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지,
육신의 목을 축이는 물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뜬금없이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셨다.
여인이 남편이 없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네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며,
지금 있는 남자도 사실은 남편이 아니다.’ 라고 하셨다.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말하지 않은 것까지도 알아맞히자,
비로소 예수님께서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선지자로 대우하였다(요4:19절).
이제 이야기는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한다.’ 고 하면서
스스로 화두(話頭)를 바꿨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때가 왔다는 것을 알리셨다.
예배처가 사마리아에 있는 산이냐,
예루살렘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물리적인 장소를 떠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서
구약의 율법을 따라 제사를 지냈으나,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에는
성전 되신 예수님(요 2:19) 안에서
그가 일러주신 대로 예배드려야 한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은
우리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영 안에서, 또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영 안에서 진정으로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성령 받은 목자에게 진리의 말씀을 배워야 한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만국이 와서 예배드려야 할 교회를
성경에 약속해주셨으니, 그곳은 바로 증거장막성전이다(계 15:5).
예수님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자,
본문의 여자는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쳐주실 것이라고 대답했다(요4:25절).
이 사마리아 여자도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시자,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자기가 그리스도를 만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다(요4:28~29절).
여기서 본문을 영적으로 생각해보면,
수가성 여인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할 성도라 할 수 있다.
과거 그에게 있던 다섯 명의 남편은
그가 따랐던 다섯 명의 목자들이라 하겠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다른 남자는
그가 섬기고 있는 또 다른 목자에 비할 수 있다.
그러나 수가성 여인과 같은 성도들이 찾고 따라야 할 참 목자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사마리아 여인은
많은 동네 사람들을 전도했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이 처음 보는 여인의 과거를 알아맞힌 사실에 놀라워하며
예수님을 청하여 이틀을 함께 보냈다.
그 후로 예수님을 믿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사마리아인들의 믿음은
이제 모르는 사람의 과거를 알아냈다는 기적 같은 일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처럼 단순하게 시작된 사마리아인의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뒤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할 만큼 자라났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사이,
먹을 것을 사서 돌아온 제자들이 예수님께 음식 드시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육신의 양식인 줄로만 알고 있던 제자들은
누군가가 예수님께 드실 것을 갖다 드린 줄로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먹어야 할 양식이 무엇인지를 말씀해주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이루는 것
즉 사명은 생명과도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은
생명의 힘을 공급하는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예수님께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 육신이 육의 양식을 먹고 생명력을 얻듯이,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 영적인 생명력을 얻는다.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추수에 빗대어 영적인 추수를 말씀하셨다.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말씀의 씨를 뿌린 자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며,
그 결실을 거두는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제자들은 비록 수고하여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으나,
영생의 열매를 추수하여 즉 성도들을 전도함으로써
선지자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받고 즐거워한다.
여기서 재림 때에 있을 영적 추수에 관해 덧붙여 설명한다.
사실 초림 예수님께서는 추수와 동시에 새 농사를 지으셨다.
육적 이스라엘 가운데서 구약의 말씀으로 결실한 성도를 추수하여
영적 이스라엘을 창조하는 동시에(롬 8:23, 약 1:18),
새 말씀의 씨(눅 8:11 참고)를 뿌리셨다.
예수님 초림 때 뿌린 복음의 씨는 마지막 때 결실한다.
마지막 때 예수님께서는
영적 이스라엘 가운데서 신약의 말씀으로 결실한 성도를 추수하여
영적 새 이스라엘 창조의 씨앗으로 삼는다.
이번에도 씨 뿌리는 자와 거두는 이는 다르지만,
그들은 다 함께 삯을 받고 기뻐한다.
예수님께서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왕의 신하가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의 아들이 병이 들어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친히 오셔서’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꾸짖으셨다.
사실 그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없고,
오로지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여 자기 아들을 고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며 능력을 나타내신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육의 병을 고침으로써
근본적인 영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다만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만 말씀하셨다.
그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만한 강력한 무엇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낫기 시작한 때가
‘네 아들이 살았다.’ 고 말씀하신 그 시각인 줄 알고
그와 온 집이 예수님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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