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신천지 성도 李,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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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 : 예수님을 의심하는 세례 요한
(눅 7:18~23)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이 그의 동생의 처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은 일에 대해

책망하다가 옥에 갇혀 있을 때,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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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3절)

"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로서,

한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했다.

그는 ‘나는 예수님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요 1:27).’ 고 할 만큼

예수님을 높이고 자신은 낮추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은 쇠하여야 하고,

예수님은 흥하여야 한다고 말했다(요 3:30).

 그러나 본장에 기록된

세례 요한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따로 두고 있었으며,

위와 같은 질문으로 자기 제자들마저 혼란스럽게 하였다.

 

​"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 라고 말씀하셨다.

 

(5절)

"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

그리고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을 아시고,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속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라고 하셨다.

 

(6절)

"

 

7~19절 : 세례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
(눅 7:24~35)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세례 요한에 대해 말씀하셨다.

 

"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

 

(7~10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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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세례 요한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러 유대 광야로 몰려갔다.

그러나 그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러 가거나

왕궁에 거하는 자들처럼 비싸고 부드러운 옷 입은 이를 구경하러 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선지자를 보러 갔다.


사실, 세례 요한은 모든 선지자들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다.

세례 요한은 성경에 예언된 약속의 목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보다 앞서 보내신 사자이다(말 3:1 참고).

그러나 그는 끝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배도자가 되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해 내리신 결론은 다음과 같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 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11~15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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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사자이기에,

실로 역대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는 말이 옳다.

그는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한 선지자 가운데 마지막 선지자인 동시에,

그리스도를 직접 보고 그리스도께 세례까지 베풀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 하시고,

‘천국은 세례 요한 때로부터 침노를 당했다.’ 고 하셨다.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 는 것은

세례 요한이 천국 밖의 사람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세례 요한을 순교자로 추대하고 있으나,

예수님의 평가는 이렇게 판이하게 다르다.

세례 요한을 천국의 외인(外人)이라 하신 것은

그가 처음 믿음을 버리고,

본장에 기록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의심하는

배도자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국이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침노를 당했다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하고 율법에 기록된 예언이 세례 요한 때까지’라는 것은,

세례 요한의 역사로

구약 시대 곧 육적 이스라엘 시대가 마감되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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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이 역사를 마치고 옥에 갇힘으로써,

예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셨으며, 그로 인해 신약 시대가 열렸다.

말라기 3, 4장에 기록된바,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사자가 이 땅에 임하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엘리야는 지금으로부터 약 2,900년 전,

하나님과 동행하며 많은 이적을 행한 후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선지자(예언자)이다(왕하 2:11).

말라기서의 예언을 문자 그대로 믿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엘리야가 불 수레를 타고 이 땅으로 돌아와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성취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말라기서에 예언된 언약의 사자는 예수님이시며,

‘오리라 한 엘리야’는 세례 요한이다(마 17:10~13).

세례 요한을 ‘구약 성경에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말 3:1, 4:5)’라고 하는 이유는

세례 요한이 엘리야와 같은 심령으로 와서,

예언 속의 엘리야가 이루기로 예정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다(눅 1:17).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신이 예언 속 엘리야의 실체가 아니라고 부인했다(요 1:19~21).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동역자가 되어야 할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서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는 결정타를 날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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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이 자신을 엘리야의 심령으로 온 사자라고 시인했다면,

사람들이 그를 임의로 대우하지(마 17:12, 막 9:13) 않았을 것이며,

나아가 예수님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먼저는 세례 요한이,

그 다음에는 자신이 진리를 외쳐도

냉담하고 무관심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태도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놀이에 비유하셨다.

 

 

"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

 

(16~17절)

"

 

 

적어도 놀이가 성립되려면

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호응해야 한다.

아이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논다고 가정할 때,

한 쪽에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며 맞장구치지 않고,

애곡하는 시늉을 해도 가슴을 치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놀이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아무리 외치며 말씀을 증거해도 차갑게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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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

 

(18~19절)

"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마 3:4) 청빈한 생활을 했으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않는 생활을 했다(눅 1:15).

그런데 그것이 트집잡기를 좋아하는 유대인들에게는 핀잔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치는 말은 무시하면서,

세례 요한의 외적인 것을 들어 귀신이 들렸다고 억지스런 떼를 쓰며 욕했다.

그러면서도 유대인들

예수님에게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이중 잣대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어떻게 행하는가는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과 다른 교세를 형성하고 있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핍박하는 데만 모든 촉각이 집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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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도 하며, 설교도 하셨다.

그렇다고 예수님을 죄인과 세리의 친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비하이며,

예수님을 저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하며 무시하는 처사이다.

특히, 이스라엘 율법사들과 제사장들은 자신들만 의롭다고 여기며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깔보았으나,

하나님의 지혜 안에 있던 예수님의 삶은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옳다 인정받고 있다.

 

20~24절: 예수님을 거부한 도성에 대한 심판
(눅 10:13~15)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다음과 같이 책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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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읽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

 

(21~24절) 

"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을 주활동 무대로 삼고,

‘고라신’과 ‘뱃새다’와 같은 인근 지역에서도

많은 권능을 행하시며 복음을 전하셨다.

가버나움과 그 근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다른 도시 주민들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도 그곳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냉담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던 이방 두로와 시돈보다,

죄악의 도시 소돔보다

이러한 고라신과 벳새다가 더욱 하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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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대로 차라리 똑같은 이적을 두로와 시돈에 행하였다면

많은 사람이 회개하였을 것이며,

소돔에 행하였다면 그 성이 멸망하지 않고 당시까지도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보고도 믿지 않는 가버나움 사람들의 교만은 하늘을 찔렀지만,

결국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음부 곧 지옥까지 낮아지게 된다.

이로 보건대,

예수님의 은혜를 받고도 믿지 않는 자가 받을 저주

불신자들이 받는 형벌보다 훨씬 크다.

그들은 마지막 심판 때에 이방인보다 견디기 힘든 죄과를 받게 된다.

 

 


25~27절 : 계시를 받는 자만이
하나님을 안다
(눅 10:21~22)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

 

(25~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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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지혜가 부족해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믿음을 가진 성도에게

천국을 허락하신다.

"순결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된다.


 

"​

예수님께서는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자가 없다 .’ 고 말씀하셨다.

 

(27절)

"

 

​"

또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라고 일러주셨다 .

 

(요 17:3)

"

 

이 두 말씀을 함께 보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계시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므로 계시는

영생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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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림 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님에게 계시를 주셨고,

예수님은 자신이 받은 계시를 제자들에게 알려주었다.

이로써 결국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계시를 받은 자들이 되었다.

재림 때에는 하나님의 계시

예수님, 천사, 사도 요한, 종들의 순서로 전해진다고 한다(계 1:1, 10:11).

그러나 재림 때 이미 죽고 없는 사도 요한이 살아나서 역사를 이루지는 않는다.

그 때는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오는 한 목자가 출현하여

요한계시록의 사도 요한처럼 행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는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목자를 찾아

그에게 계시의 말씀을 배우는 것

예수님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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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0절 :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

 

(28~30절)

"

 

유대인들은 항상 무거운 율법과 유전(遺傳)의 멍에를 메고 있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비롯한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

자기는 지키지도 않으면서,

백성들에게는 율법의 조목조목을 들어 지키라고 강요했다.

"

예수님께서는

위선적인 종교 치리자들을 가리켜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 라고 하셨다.

 

(마 2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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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매여 몸과 마음에 쉼이 없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식의 세계로 초대하셨다.

예수님께서 메라고 하신 것은 율법의 굴레가 아닌,

예수님께서 함께 져 주시는 가벼운 멍에이다.

이스라엘의 농경 문화에 따르면,

어미 소와 새끼 소가 함께 멍에를 메고 밭을 갈았다.

실제로 밭을 가는 것은 어미 소였고,

새끼 소는 어미 소를 따라다니다가 저절로 밭 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미 소와 같은 존재이다.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가다보면,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멍에를 질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자는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다.

사진출처 : 신천지 성도 李

마음의 안식을 얻으면

육신의 짐은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안식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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